‘골키퍼는 내 운명’ 영생고 GK 김준홍이 다시 축구로 돌아온 이유는?

  • 강대희 기자
  • 발행 2021-06-21 09:29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골키퍼가 프로팀에 합류해 성인무대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한국축구 최상위리그 K리그1의 명문 전북현대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 선수는 한창 기량이 성장할 초·중학교 시절에 2년 동안 축구와 연을 끊었다. 이유는 축구선수 출신인 아버지 때문이란다. 이 선수의 스토리가 궁금하지 않은가?



“차두리 형은 정말 대단해요. 우리 아빠는 (차두리의 아빠) 차범근과는 비교도 안 되니 저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마 부담감이 어마어마했을 거예요.”



전주영생고등학교(전북현대 U-18) 3학년 골키퍼 김준홍은 인터뷰 도중 대뜸 이렇게 말했다. 축구선수 출신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 축구를 하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다가 나온 말이다. 얼떨결에 아버지를 평가절하(?)하긴 했지만 주변의 시선과 그로 인한 압박감이 어린 나이의 그를 얼마나 짓눌렀을까를 생각하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김준홍은 현재 인천유나이티드 골키퍼 코치를 맡고 있는 김이섭의 아들이다. 김이섭 코치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포항스틸러스, 전북현대, 인천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골키퍼였다. 리그 통산 217경기를 뛴 베테랑 골키퍼였던 그는 2011년을 끝으로 은퇴한 뒤 대건고(인천유나이티드 U-18), 전북이리고 GK 코치를 거쳐 2019년부터 인천유나이티드 GK 코치를 맡고 있다.



2003년생인 김준홍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천상 축구선수다. ‘아버지’가 뛰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축구의 길로 들어섰고, ‘축구선수 아버지’로 인한 주변의 시샘과 질투 때문에 축구와 잠시 멀어졌지만, 결국 ‘아버지 때문에’ 다시 축구의 길로 들어섰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2년 동안 축구와 멀어졌던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전문 선수로 다시 복귀, 복귀한 지 2년 만에 연령별 대표팀 선수로 국제대회에 나가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김준홍은 영생고 1학년이던 2019년, 김정수 감독이 이끄는 U-17 월드컵 대표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려 브라질에 다녀왔다.



U-17 월드컵 출전이 그의 1차 목표였다면 2차 목표는 준프로 계약을 맺는 것이었다. 김준홍은 두 번째 꿈도 최근 이뤄냈다. 전북현대는 김준홍과 준프로 계약 절차를 마무리하고 곧 발표할 예정이다(6월 2일 발표). 이제 김준홍은 대한민국 골키퍼 레전드인 이운재 GK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전북에서 활약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고 있다. 김준홍을 지난달 14일, 영생고 숙소 근처에서 만났다.



아버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축구를 시작했을텐데 아버지가 축구 선수를 권유했나요, 아니면 본인이 먼저 하고 싶다고 말했나요?

아빠가 권유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제가 아빠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자기가 가지 못한 자리에 아들이 갔으면 하는 바람이 아빠 마음 속에 있는 것 같았지만 아빠는 부담 주기 싫어서 말씀 안 하셨죠. 제가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정식 축구부에 들어간 것은 여덟 살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현역 생활이 기억 나요?

제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아빠가 현역 막바지셨어요. 그때 사진이 남아있어서 그걸 보면 기억이 나요. 아빠는 현역 시절에 헤어 스타일이 엄청 독특하셨어요. 장발에다 파마도 하셨더라구요. 그 사진 보면서 아빠한테 “그때는 이게 유행이었어요?”라고 물어보면 아빠는 쑥스러워서 “집어치워라”고 하세요(웃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는 어느 포지션을 맡았어요?

제가 또래에 비해 덩치가 크니까 최전방 공격수부터 센터백, 골키퍼까지 두루 했어요. 그런데 저는 골을 넣었을 때보다 막았을 때 더 희열을 느꼈어요. 조현우 선수가 예능프로그램에서 나와서 “나는 골을 막았을 때 상대 표정을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고 했는데 저도 그랬거든요.



그렇게 재밌었던 축구를 한동안 그만 뒀다고 들었어요.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요?

사실 부모님께는 한 번도 말씀 드리지 않았는데... 제일 큰 이유는 축구선수 아빠의 아들이라는 시선 때문이었어요. 설령 남들이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도 저 스스로는 그게 엄청난 압박감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축구를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턴가 흥미를 잃었던 거죠. 그리고 축구부 생활이 즐거웠지만 아무래도 친구들과 학교 밖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잖아요. 두 가지가 겹쳐서 6학년이 될 때 축구가 하기 싫다고 엄마에게 말씀 드렸죠.



그때 원 없이 놀았어요?

네! 공부도 안 하고 진짜 열심히 놀았어요. 가고 싶었던 PC방에도 가고요. 또래들과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했죠. 처음 한두 달은 정말 재밌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놀고 나니까 뭔가 공허했죠. 축구 생각이 다시 나더라고요.



혹시 축구선수 말고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나요?

축구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제가 그만 둔다고 했으니 마음이 있어도 말은 못했죠. 그리고 중학교 가서 공부를 해보니 항공정비사나 파일럿도 꿈꾸게 됐어요. 제가 수학이랑 과학을 좋아했거든요. 하지만 결국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2년 넘게 전문 축구를 하지 않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축구를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 금산중 사령탑이었던 안대현 영생고 감독이 놀고 있던(?) 김준홍 선수에게 테스트를 제안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빠와 안대현 감독님이 전주대학교 선후배 사이에요. 아빠가 감독님을 잘 챙겨주셔서 아직도 친하게 연락하며 지내십니다. 자연스럽게 저도 어릴 때부터 감독님을 가족 모임에서 자주 뵈었죠. 감독님이 저를 볼 때마다 “너는 축구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용기를 내서 “축구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했어요.



금산중은 전북현대 유스팀인데 프로 유스팀이 시즌 도중에 선수를 데려오는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때 금산중 골키퍼가 1학년 한 명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테스트를 하게 됐어요. 아빠랑 둘이 훈련하면서 몸을 만들었어요. 전주공고와 연습경기에 투입됐는데 그때 스카우트와 코칭스태프가 왔습니다. 그분들이 경기를 보고 결정하기로 하셨어요. 저는 그때 긴장해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제가 골키퍼 1대1 찬스를 막는 걸 보고 아빠가 저한테 “너 운이 좋았다”고 하더라고 요. 그때 스카우트와 코치 선생님들께서 제가 기초가 부족하다는 것을 감안하고도 가능성을 보고 뽑아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테스트를 거쳤지만 주변의 시선이 의식됐을 것 같아요.

아빠도 “너가 내 아들이라서 여기 온 게 아니라 너의 실력으로 인정 받아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더 노력했어요. 지금도 몇몇 분들은 제가 U-17 월드컵에 간 것도, 준프로 계약을 맺은 것도 아빠 덕분이라고 생각하실지 몰라요. 그런 시선이 힘들어서 축구를 그만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더 큰 동기부여 요소라고 생각해요.



축구선수였던 아버지를 둔 아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참 힘들겠어요.

차두리 형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아빠는 차범근과는 비교도 안 되니 저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부담감이 어마어마했을 거예요.



전문 선수로 복귀한 지 2년 만에 U-17 월드컵에 가게 된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적응이 어려웠을 텐데 빠르게 또래들을 따라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운동은 기본적으로 많이 했는데 경기 감각과 템포를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습니다. 몸으로 하는 건 체력의 한계가 있으니 쉬는 시간에 영상을 많이 보면서 따라잡으려고 했어요. 아빠가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많이 된다며 추천해주셨어요. 마누엘 노이어, 테어 슈테겐 같은 독일 골키퍼 영상을 많이 봤습니다. 많이 따라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노이어와 성향이 닮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실력은 한참 떨어지지만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어요. 또 제가 덩치는 크지만 근력이 약한 상태였거든요. 팔굽혀펴기는 10개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맨몸 운동과 줄넘기를 많이 했습니다.


영생고 1학년 때 한 살 월반해서 U-17 월드컵에 다녀왔잖아요. 뭐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브라질에서의 모든 순간이 다요. 저는 경기를 안 뛰는데도 FIFA 주관대회는 처음이라 엄청 긴장됐어요. 심지어 (주전 골키퍼) 신송훈 형이 경기 전 몸 푸는 걸 도와주는데도 엄청 떨리더라고요.



신송훈 형에게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송훈이 형은 사소한 것부터 철저히 해요. 휴대폰 사용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매일 훈련일지를 작성하는 일 같은 거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를 본받고 싶어요. 골키퍼는 실수하면 골과 직결되는 자리라 항상 두려움이 있는데 송훈이 형은 두려움 없이 플레이하는 습관이 몸에 배 있어요. 그래서 실력이 느는 게 아닐까요? 최근에 송훈이 형과 연락했어요. 제가 올해 영생고 주장을 맡았는데 주장 경험이 많은 송훈이 형한테 상담 받았죠.



U-17 월드컵 이후 뭐가 달라졌어요?

아무래도 자신감이 많이 생겼고요. 월드컵 다녀온 뒤로 피지컬의 중요성을 느껴서 근력 운동도 더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아빠가 “골키퍼는 항상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중학교 때보다는 여유도 생긴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 부족해요.



준프로 계약을 맺고 프로에 가게 됐어요. 기분이 어때요?

운이 따른 것 같아요. (송)범근이 형이 올림픽대표팀에 차출되고, (김)정훈이 형이 상무로 가게 돼 제가 준프로 계약을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정훈이 형을 보면서 준프로 계약에 대한 꿈을 키웠는데 이루게 돼서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도 돼요. 다른 팀도 아니고 ‘신인들의 무덤’ 전북현대잖아요.



‘한국축구의 레전드’ 이운재 코치님으로부터 배우게 됐어요.

골키퍼는 기량도 중요하지만 다른 포지션에 비해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에서 경험으로 따졌을 때 이운재 코치님이 가장 높이 계신 분이잖아요. 보통 선수들은 평생 하지 못할 경험을 많이 하셨으니 그걸 배우면 다른 선수들보다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2년 후 열리는 U-20 월드컵 욕심도 있을 것 같아요.

U-20 월드컵을 주전으로 뛰는 게 또다른 꿈이자 목표예요. 선배님들이 준우승 신화를 썼잖아요. 저도 ‘빛광연(빛 + 이광연)’ 형님처럼 되고 싶어요. U-17 월드컵을 다녀오면서 U-20 월드컵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졌어요. U-17 월드컵 함께 다녀왔던 (이)승환이가 아직까진 저보다 위라고 생각하는데 U-20 월드컵에서는 제가 넘버원이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대현 감독님을 비롯한 코치 선생님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해요. 특히 정부선 GK 코치님께 감사 드려요. 제가 대표팀에서 지적 받았던 내용을 항상 물어보시고, 지적사항을 고칠 수 있는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짜주셨거든요. 프로팀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PROFILE

생년월일 : 2003년 6월 3일

신체조건 : 187cm, 85kg

포지션 : 골키퍼

주요 경력

인천유나이티드 U-12 – 금산중 – 영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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