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훈이 가는 길이 한국 풋살의 역사다

  • 강대희 기자
  • 발행 2022-04-13 09:58


알아주는 사람이 많이 없어도 이 길을 걷게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신종훈(32, 경기LBFS)이 오늘도 풋살화 끈을 단단히 동여매는 이유다.



과거 생활체육 성격이 짙었던 풋살은 2009년 FK리그 출범으로 수면 위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식 스포츠로 판이 깔리면서 풋살 자체의 수준이 한 단계 진화했고 스타들도 여럿 배출됐다.



신종훈은 그중에서도 대표주자였다. 한국 풋살을 이야기할 때 그의 이름을 빼놓을 수는 없다. 간결하고 깔끔한 플레이와 강한 슈팅으로 팀 공격의 대부분을 책임졌던 신종훈은 FK리그 초창기부터 초대형 신성으로 주목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역대 FK리그에서 신종훈은 득점상 두 차례(2009-10, 2010-11), MVP는 무려 세 차례(2011-12, 2013-14, 2014-15)를 차지했다. 리그 우승 경험만 최근까지 총 일곱 번이다. FK컵에서도 2015년 득점상, 2018년에는 MVP를 수상했다. 명실공히 한국 풋살의 최고 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사실 단순히 기록만으로 신종훈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의미 있는 도전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그는 2013년 일본 풋살리그, 2017년과 2021년에는 중국 풋살리그에서 뛰면서 한국 선수 최초로 한중일 풋살리그를 모두 경험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에 용감히 발을 내딛으며 후배들을 위한 이정표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아직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풋살에 있어 신종훈의 존재는 특별하다. 어느덧 선수 생활 후반기에 접어든 그는 자신의 경험과 열정을 끝까지 쏟아내 한국 풋살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스포츠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꿈이다.



-최근에 새로운 팀에 입단했다.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2021년 말에 국내로 돌아와 신규팀인 경기LBFS에 입단했다. 최근 열린 2021-22 FK 드림리그에 참가했는데 전승 우승을 차지했다. 원래 전승 우승을 목표로 이번 리그에 참가했는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 좋은 선수들이 모여 한마음 한뜻으로 경기에 나선 덕분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경기LBFS는 어떤 팀인가?

경기도 용인시를 연고로 하는 팀이다. 풋살팀 최초로 연봉제로 운영되고 있다. 기업구단(엘엔디엔자임)인데 단장님이 평소 풋살에 관심이 많으셔서 팀까지 창단했다고 들었다. 연봉을 받으면서 뛸 수 있는 팀이기에 김호진, 이민용, 정한국 등 좋은 선수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주-경기LBFS의 LB는 Luminous Bridge(빛나는 다리)의 약자로 대중과 풋살의 연결고리가 되겠다는 뜻을 지녔다).



-어떻게 경기LBFS에 들어오게 됐나?

아는 선후배 선수들이 팀에 많이 있었다. 선수들, 단장님, 팀 관계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 팀이 가진 비전과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마음이 끌렸다. 게다가 팀이 인프라 확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현재 경기LBFS가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풋살 센터를 용인에 건립 중인데 올해 안으로 마무리된다고 알고 있다.



-베테랑 선수인만큼 팀에서 기대하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을 앞에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선은 이들과 친해지는 것이 먼저다(웃음). 후배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뛸 수 있도록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 분명 있을 것이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경기LBFS에 있으면서 팀 분위기가 정말 좋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최근 FK드림리그 우승 후에는 구단에서 따로 우승 기념 파티를 열어줬는데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라 새로웠다. 선수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려는 구단의 노력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동기가 저절로 생기더라.



-이제 옛날이야기를 해보자. 선수 커리어의 시작이 축구였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고등학교까지 했다. 초창기에는 골키퍼였다. 지금 풋살에서는 골키퍼 빼고 다 한다(웃음). 몸을 던지면서 날아오는 슈팅을 막는 것이 재미있어서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더라. 그래서 6학년 때 필드 플레이어로 전환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여러 가지 일로 진로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축구를 놓게 됐다. 그 당시만 해도 축구는 아예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집 근처 풋살장에 나갔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풋살이었는데 하다 보니 축구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렇게 꾸준히 풋살을 했고 생활체육 대회까지 출전하게 됐다.



-그러다가 2009년에 FK리그가 출범했다.

풋살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분이 있었다. 이분이 서울에 풋살팀을 만들 예정이고 FK리그에 참가할 건데 함께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참가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풋살 선수가 됐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좋았다. 취미로 즐기던 풋살이었는데 정식 리그가 된다는 것이 행복했다.



-리그 초창기부터 뛰어난 성적으로 두각을 보였다.

사실 내가 크게 잘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ONSIDE : 거짓말!) 아니, 진짜다. 그저 축구를 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을 풋살로 잊게 되는 것이 좋았다. 재미있었다. 너무 재미있으니 더 잘하고 싶었고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초창기만 해도 풋살 훈련이라는 것이 그렇게 과학적, 체계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몸 관리를 충실히 했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따로 했다. 무엇보다 너무 재미있으니까 긴 시간 운동을 해도 지치지 않았다. 오전 10시에 운동을 시작해 밤 9시에 끝날 정도로 당시에는 풋살에 미쳐 살았던 것 같다.



-국내에서는 FS서울과 전주매그풋살클럽에 있었는데?

FS서울에 있었을 때는 막내였다. 워낙 좋은 기량을 가진 형들이 많았고 그 형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배움이나 마찬가지였다. 형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전주매그풋살클럽 시절에는 이영진 전 감독님에게서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이전에는 개인 기량만 가지고 풋살을 했다면 이영진 전 감독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풋살의 세밀한 부분까지 캐치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풋살을 보는 눈을 한 단계 발전시킨 셈이다.



-2013년 일본 풋살리그에는 어떤 계기로 나가게 됐나?

당시 내가 있었던 전주매그풋살클럽과 일본 나고야오션스라는 팀이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다. 그래서 비시즌에 친선경기 초청을 받아 일본을 가게 됐다. 나고야오션스의 단장, 사장님이 경기를 보고 내게 일본에서 뛰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사실 나고야오션스라는 팀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일본이 풋살 선진국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받아들이게 됐다.



도쿄에서 개막전을 했을 때 관중이 5천 명 이상 들어왔다. 5천 명 앞에서 뛰는 것은 처음이라 다리가 안 떨어지더라(웃음).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적응하는데 쉽지는 않았지만 팀에서 많이 도와준 덕분에 1년을 잘 버틸 수 있었다.



-중국 풋살리그 경험도 듣고 싶다.

중국도 먼저 제안을 받고 나가게 됐다. 2017년에 칭다오첸시, 2021년에 허베이푸미클럽에 있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현지 적응은 쉽지 않았다. 통역이 있었지만 중국어를 잘하지 못했고 음식도 잘 안 맞아서 체중도 2kg 넘게 빠졌다. 코로나19 문제도 있었다.



중국 풋살은 일본보다 객관적인 실력은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투자를 많이 하기에 리그 운영을 잘하고 있다. 선수들이 모두 연봉을 받고 있고 인프라도 괜찮았다. 풋살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한중일 풋살리그를 모두 경험한 유일한 한국 선수다.

아직 한국 풋살의 수준이 상위 레벨이 아니다보니 해외로 선수가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자신도 일본과 중국, 한국에서 풋살리그를 모두 경험해본 것이 다시는 갖지 못할 이력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중국 풋살리그를 경험하면서 느낀 점도 있을 텐데?

결국 풋살을 향한 관심을 올리기 위해서는 풋살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일본, 중국도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2011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AFC 풋살 챔피언십 동아시아 예선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내가 기억하는 최고 성적이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선수들이 노력을 많이 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본, 중국에서 직접 뛰면서 환경이 얼마나 좋은 선수를 만들어내는지 몸소 경험할 수 있었다. 핑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모두가 더 노력해야 한다. 곧 2022 AFC 풋살 아시안컵 예선을 대비한 소집훈련이 진행되는데 나도 참가할 예정이다. 베테랑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려고 한다.



-선수 생활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미래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일단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만큼 오래 하는 것이 목표다. 이후에 은퇴 시기가 다가온다면 풋살 지도자보다는 행정가 쪽으로 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각 나라와 활기차게 교류하면서 우리나라의 풋살 시스템을 발전적으로 바꾸는 데 힘이 되고 싶다.



풋살이 사랑받는 스포츠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선수들이 있어야 한다. 좋은 선수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좋은 지도자도 중요하지만 좋은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나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빛을 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ROFILE

생년월일 : 1990년 1월 23일

신체조건 178cm 80kg

포지션 FIXO(최종 수비수)

주요 이력 FS서울(2009~2010), 전주매그풋살클럽(2010~2012, 2013~2016, 2018~2021), 나고야오션스(일본, 2013), 칭다오첸시(중국, 2017~2018), 허베이푸미클럽(중국, 2021), 경기LBFS(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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